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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23 '아펜젤러 순직 기념관'











성도님들의 기도와 배려로 한국에서 오랜만에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국에 도착해서 아버지를 뵙고, 처가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러 갔습니다. 장인어른께서는 몇년 전 은퇴를 하시고 고향으로 내려가셨는데, 그 곳이 충남 서천입니다. 두분을 만나고 서울로 올라오기 전,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한국 감리교 선교사로 조선에 왔던 미 연합감리교회 소속 '아펜젤러 선교사님'의 순교지가 바로 서천 근처의 바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처가에서 10분 거리의 마량이라는 곳에 '아펜젤러 순직 기념관'이 있었습니다. 감리교 목회자로 목회하시다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2년 전 감리교 목회자로 은퇴하신 아버지, 감리교 장로로 은퇴하신 장인, 모두 감리교의 식구들입니다. 저와 아버지는 기념관 이야기를 듣고 그냥 서울로 올라갈 수 없어서 그곳을 찾았습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1885년(고종 22년) 미국감리교 선교사로 조선에 와 인천 내리교회, 정동제일교회 등 한국의 첫 감리교회들을 세우신 분입니다. 성경 한국어 번역사업과 선교활동을 펼치시고, 배재학당을 설립한 한국 근대교육의 모습을 바꿔 놓은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숭고한 죽음은 무덤 하나 남기지 못하고, 서해안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목포에서 있었던 성서번역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902년 6월 11일 배를 타고 인천 제물포항에서 목포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념관 위치에서 40여㎞ 떨어진 어청도 인근에서 선박 충돌사고로 순직하고 맙니다. 감리교의 후손들은 그분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기념관을 짓게 된 것입니다.


동현이와 서현이가 저에게 "아빠, 왜 이곳이 중요해?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동현아, 서현아, 우리가 믿음의 선조들의 과거를 존중하고 고마워하면, 너희들의 미래가 존중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게 된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서천의 작은 마을, 마량이라는 곳에는 한국 감리교의 미래를 바라보며 기도하고 열정적으로 선교했던 아펜젤러 선교사의 순교의 은혜가 남아있습니다. 기념관 앞에 세워진 묘비 안에는 아펜젤러 목사님의 다짐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내 생에 야망이 있다면 그것은 평생 주님께 봉사하는것"


사랑하는 베다니 성도 여러분, 선교사님의 야망이 열매가 되어 지금의 우리가 된 것처럼, 우리도 평생 주님을 위해 봉사하며, 믿음을 남기고, 전해주는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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